지지않는 해를 상상해본다.
상업화랑 《Poetic Forensic》 전시 비평
심선용 큐레이터, 2025
신성민은 사진과 영상 사이의 매체적 간극, 그리고 꿈과 현실이라는 인식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모호한 감각들을 탐색한다. 작가의 서사는 언제나 이미 정해진 장면을 향해 눈을 감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신’을 외부가 아니라 무의식적 체계가 만들어낸 구조로 이해하며, 그 질서 앞에서 인간이 취하는 반응을 추적한다. 영상은 하나의 진술이라기보다 해석의 장치에 가깝다. 꿈처럼 파편적이고 흘러가는 흐름을 가진 어떤 구조. 이 지점은 <스스로 구원하기>와 <회색지대> 두 작품을 관통한다.
<스스로 구원하기>는 꿈을 방향키처럼 이용하려는 인간의 오래된 습관에 대한 탐구이다. 작가는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기 위해 해석을 통해 변수를 제거하려는 태도”를 이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는 동시에, 그것을 역설적으로 바라본다. 인간은 꿈의 해석을 통해 삶을 통제하려 하지만, 그 순간 오히려 자신의 운명을 외부-점시, 기호, 타인의 판단, 혹은 무의식-에 위탁하게 된다. 무의식은 사실상 자기 자신이며, 그것에 운명을 넘긴다는 것은 곧 자신을 타자화하는 일이다.
이러한 역설적 구조 속에서 영상은 컬러와 흑백을 넘나든다. 이는 꿈의 단계, 즉 수면으로 완전히 잠기지 않은 경계 상태를 시각화한 장치이다. 또한 영상 곳곳에 삽입된 막(幕)처럼 느껴지는 어둠 역시 꿈의 속성인 파편성, 비논리적 전환을 영상의 선형적 시간 속에 삽입하려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하나의 이야기보다, 여러 파편이 느슨한 흐름으로 엮여 있는 꿈의 구조와 유사하다.
영상 속 이동 수단은 인간이 겪는 통제 가능성의 범주를 상징한다. ‘열차’는 궤도를 이탈할 수 없는 통제된 운명, ‘말’은 생명체가 가진 제한된 방향성, ‘걷는 인간’은 제한된 자유, ‘공중부양의 이미지’는 통제를 벗어난 자유로움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신성민은 이동 수단의 변화를 통해 통제되는 의식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흐름을 보여준다. 특히, 죽어가는 흰 말은 구원의 상징이자 예언적 이미지로, 운명에 대한 믿음이 권능과 무력함을 동시에 안고 있음을 드러낸다.
<스스로 구원하기>의 “알고도 무력한 삶보다는 낫다”라는 텍스트는 이러한 긴장을 압축한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자유가 아닌 무력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작가는 정해진 길로 가는 삶이 아닌,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제시한다.
<회색지대>는 <스스로 구원하기> 이전의 작업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인터랙티브 설치는 관람객의 움직임을 통해 이미지 망점이 변화하게끔 작동한다. 이는 불확실성 속에서 의미를 생산하려는 해석의 의지가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드러낸다. 이때 상호작용은 단순한 기술적 몰입이 아니다. 관람객은 자신의 움직임이 이미지의 분해와 재구성을 낳는다는 점에서, 의미 형성의 주체가 아니라 조건을 발생시키는 존재로 위치한다.
신성민은 꿈을 단순한 무의식의 잔존물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개인이 세계와 자신을 조직하는 중층적인 과정으로 다룬다. 영상과 인터랙티브 작업은 인간의 주체성이 작용하는 범주에 대해 재고하게 하며, 의식과 무의식의 층위를 드러낸다. 이때, 꿈을 해석하는 과정은 삶을 통제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이 아닌, 해석을 통해 자신의 삶이 타자화되는 순간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신성민의 작업은 불확실성을 통제하기보다, 그 불확실성을 통과하여 스스로의 무의식과 운명을 또렷이 마주 보는 태도, 즉 <스스로 구원하기>의 실천적 층위를 드러낸다.